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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류지

나라에 있는 호류지(法隆寺)는 일본에서 처음 1993년 12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지정된 곳입니다. 이 절은 서기 607년 창건되었습니다. 창건 당시 백제 사람들이 직접 건너와서 지은 건축입니다. 그런데 670년 불에 타 없어진 것을 그 후 재건했습니다.

이 불은 벼락에 의한 불이어서 순식간에 타지 않고 비바람 속에서 서서히 타기 때문에 내부에 있는 중요한 유물들은 꺼내서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구려 스님 담징(曇徵, 서기 570 - 631)은 610년 백제를 거쳐 일본에 들어가 일본 스님 법정과 같이 호류지에 거하면서 오경, 불경 등을 강론하고 금당 벽화를 그렸다고 합니다.

이 절에는 여러 가지 일본 국보가 많지만 한반도와 관련된 몇 가지만 간략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호류지는 서원과 동원으로 나누어져 있고 여러 건물이 15 채 이상 지어져 있고 넓이는 약 5만 7 천 평입니다. 오중탑, 금당은 서원에 있고, 몽정은 동원에 있습니다. 그리고 서원과 동원 사이 서원 뒤편에 구다라 관음당이 지어져 이곳에 구다라 관음상, 옥충주자 등 호류지에서 보관해 왔던 여러 불교 유물이 보존, 전시되어 있습니다.

오중탑

탑은 원래 스투파(卒塔婆)라고 하여 석존의 유골을 봉안하기 위해서 만든 구조물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오층탑이라고 하는데 이곳 사람들은 오중탑이라고 합니다. 높이는 33미터입니다. 이 탑이 다른 곳에 있는 일본 탑과 다른 것은 탑의 각층 처마의 길이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진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형태는 백제탑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 탑 역시 백제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백제 사람들은 백제 땅 익산에 삼원 삼탑의 미륵사를 지었습니다. 중앙의 목탑은 기단의 한 변 길이가 18미터로 대략 추정 높이는 110미터였다고 합니다. 백제 사람들은 신라 황룡사의 구층 목탑을 지었는데 그 높이가 80 미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후세 지어진 것으로 임진왜란 뒤 사명대사가 다시 지었다고 하는 속리산 법주사의 팔상전이 백제탑의 기법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라고 합니다(법주사 팔상전 높이 64미터, 기단의 한 변 길이 11미터).

오중탑 일층 안쪽은 내진이라고 합니다. 내진은 동서남북 네 면에 각기 다른 소상이 있습니다. 동쪽에는 유마거사와 문주보살이 문답하는 장면이 흙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북쪽에는 석가가 열반하여 많은 제자들이 슬퍼하는 모습이 진흙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서쪽에는 석가의 분사리가 위쪽 관에 안치되어 있고 앞쪽에 여러 제자들이 기도하는 모습이 진흙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남쪽에는 미륵보살의 설법 장면이 만들어져있습니다.

탑 내부 일층 모서리 네 곳에는 직각으로 두 면이 세워져 모두 여덟 면이 있는데 이곳에는 성관음상, 문수보살상 등 여러 보살이 벽화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벽화의 보살들은 금당벽화의 보살상과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합니다. 이들 보살상은 뒤에 보수하면서 새로이 발견된 것으로 현대의 컴퓨터 기술로 밝혀낸 것입니다. 일층 천정은 나무로 만든 격자무늬로 되어 있는데 격자무늬 안에는 초록색 연꽃무늬 370개가 그려져 있습니다.

금당

호류지 금당은 고구려 승려 담징이 그린 금당벽화로 유명합니다. 1949년 1월 불에 타버렸지만 모사해둔 것이 있어서 다시 지으면서 모사해둔 작품을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불에 탄 벽면은 모두 수장고에 영구보존하고 있습니다.

불에 탄 벽화는 완전히 탄 것이 아니고 연기에 그을었기 때문에 희미하게 벽화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불에 그슬리면서 벽화를 그릴 때 사용된 염료와 안료가 화학 반응을 일으켜 표면으로 드러나면서 새로이 밝혀진 사실도 있다고 합니다.

금당은 중앙에 석가삼존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리고 천정에는 닫집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금당 석가삼존불 역시 백제 시대 작품으로 봅니다. 특히 불상의 앞 아래 옷 주름 등은 현존하는 백제 지역의 마애불상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똑같은 물결무늬로 일본에서는 그다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리고 금당의 불상 위 천정에는 닫집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 닫집 역시 한국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으로 특히 닫집의 봉황장식은 무령왕(501-523) 무덤에서 출토된 베게의 양 쪽에 만들어둔 봉황장식이나 백제 금동향로의 맨 꼭대기에 있는 봉황과 너무 닮았습니다.

건물의 천정에서 이어지는 벽에 비천상 즉 천인천여도가 사방으로 그려져 있고 그 아래로 산 그림이 있으며 그 아래에 그 유명한 담징의 벽화 즉 사불 정토도가 있습니다. 금당벽화는 동서남북 네 벽에 모두 12면 벽화로 되어있습니다. 이들은 다시 석가 정토도, 아미타 정토도, 미륵 정토도, 약사여래 정토도 등 넷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래서 이 벽화를 사불 정토도라고 합니다. 각 그림의 중앙에 석가, 아미타, 미륵, 약사여래 등이 그려져 있고 이들 양 옆에는 보살들이 중앙을 향해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보살들은 모두 대칭을 이루고 있고 네 면 모두 형태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이 사불 정토도 이외에 관음 정토도가 여러 장 그려져 있습니다. 이 벽화를 위해서 사용된 물감의 수는 약 11 가지로 밝혀졌고 벽의 흰색까지 합하면 모두 열 두 가지 색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벽화가 그려진 흙벽은 기둥과 보 사이를 노송나무를 엮어서 고정시킨 뒤 흙을 안에서부터 바르고 마른 다음 다시 밖에서 발라 완성시킨 뒤 회를 칠한 것입니다. 최근 이 벽의 두께와 동일한 방식으로 벽을 만들었는데 6개월이 걸렸습니다.

금당 벽화 그림을 이용한 여러 기념품을 호류지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금당 벽화가 불에 타기 전에 유명 화가들이 모사하여 그려 놓은 것입니다. 부드러운 선과 대담한 색상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호류지 절은 담징의 금당벽화나 백제관음상이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담징의 금당벽화는 몇 차례 불이 나서 타버렸지만 모사하여 간직해왔던 것이 있어서 원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금당이나 박물관에 모사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백제 관음

일본사람들은 구다라 관음이라고 합니다. 굳이 백제라는 말이 붙여진 것을 보면 백제 사람들이 만들었거나 백제에서 가지고 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머리 장식으로 사용된 청동 판을 뚫어서 장식을 새기는 투조 기법이나 여러 가지 특징으로 보아 백제 작품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특히 이와 비슷한 청동 투조 장식은 백제 무령왕(501-523) 무덤 장식품 연화당초문 투조와 동일합니다.

백제관음은 대략 7 세기 경 제작되었으나 1200년경 이곳에 안치되었다고 합니다. 높이는 209.4 센티미터, 나무 재료는 녹나무입니다. 녹나무는 상록 활엽으로 한국의 남해안이나 제주도에 자생합니다. 일본에도 정원수로 많이 심습니다.

한국에서는 이 녹나무가 잡귀를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준다고 하여 남부지방에서 많이 심고, 이 나무로 가구나 장식을 만들어 집에 둔다고 합니다. 백제 관음은 불교 신자의 눈이 아니고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 봐도 참 멋있습니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답습니다. 완벽한 몸매와 유려한 선, 단순하면서도 요염한 몸의 비례는 신의 경지, 신의 세계 그 자체입니다.

백제관음상 귀 양쪽에는 청동으로 만든 꾸미개가 머리에서 귀를 거쳐서 턱 아래까지 드리워져있습니다. 이 청동 꾸미개는 청동판에 직접 구멍을 뚫는 투금기법을 사용하여 만들었습니다. 이 투금 기법은 백제 꾸미개의 특징으로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백제관음상은 목조관음보살입상이라도 하는데 일본에서 국보라는 제도가 있기 전부터 1897년 12월 고 신사 절 보호법에 기초하여 보호되었습니다. 1951년 6월 문화재보호법에 의해서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소설가 정한숙 선생님의 소설 금당벽화(1955년 7월 사상계)는 한때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고구려 스님 담징이 고국을 떠나 일본에서 금당벽화를 그리기까지 고국 고구려에 대한 생각과 자신의 갈등과 번민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국어교과서로 공부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호류지 절의 금당 벽화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몽전 구세관음상

호류지 안쪽에 몽전이라는 팔각의 둥근 건물이 있습니다. 이곳에 구세관음이 모셔져 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공개하기 때문에 쉽게 볼 수 없습니다. 다만 구세 관음은 볼 수 없으나 어두운 속을 들여다 볼 수는 있습니다.

호류지 절 안에 있는 유메도노(夢殿)에는 구세관음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이 구세관음상은 해마다 두 번 공개합니다. 구세관음이 안치되어 있는 유메도노는 나라시대인 서기 739년 8각형으로 지은 건물입니다. 이 건물 한 가운데에 남향으로 구세관음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일본 불교는 관음 보살신앙이 강합니다.

구세관음이란 말은 원래 불교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이름이 아닙니다. 다만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 속에 관음묘지력 능구세간고(觀音妙智力 能救世間苦)라는 표현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이곳 구세관음상은 녹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높이 178.8cm 로 얼굴 뒤에는 아몬드형 광배가 붙여있습니다.

구세관음상에는 나무 바탕에 옻칠을 하고 그 위에 금박을 입혔습니다. 구세관음상은 호류지절에서 나무찬장 속에 넣어서 감춰오다가 1884년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후 한 해에 두 번 일반에 공개합니다. 올해 2014년은 4월 11일에서 5월 18일, 10월 22일에서 11월 22일입니다.

구세관음상은 양손을 가슴 아래 모아서 보주를 들고 있습니다. 이 보주는 모든 사람의 소원이 이뤄지기를 소망하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머리에는 관을 쓰고, 몸 양 옆으로는 옷자락이 아래를 향해서 물결 모양을 이루고 있습니다.

옥충주자(玉蟲廚子)

저는 처음 이것의 용도가 무엇이고 왜 이런 이름이 지어졌는지 궁금했었습니다. 한마디로 부처님을 모셔둔 작은 찬장입니다. 이 찬장은 나무로 만들고 모서리 장식을 위해서 비단벌레의 등껍질을 붙이고 그 위에 청동판을 가늘게 뚫어서 비단벌레의 등껍질이 보이게 했습니다.

이 비단 벌레는 풍뎅이 비슷한 곤충으로 등은 검은 청색과 녹색으로 반짝입니다. 한국의 비단벌레가 일본어로 옥충 즉 옥벌레입니다. 이 찬장의 위쪽은 지붕처럼 만들어져 있고 지붕 아래 감실에는 석가모니불을 안치했을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이 나무 찬장은 표면에 나전 칠을 했습니다. 이 나전은 한반도의 낙랑 유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같은 종류의 장식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일본에는 아직 나전이 전해지지 않았을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찬장의 아래쪽에는 사신사호도(捨身飼虎圖)가 그려져 있는데 호랑이의 사실적이고 위엄 있는 모습이 일품입니다. 일본에는 호랑이가 없기 때문에 일본 사람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참고 및 출전]
존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글을 읽다. 2008.5
김달수 저, 배석주 역, 일본 속의 한국문화 유적을 찾아서, 대원사, 1995.

출처: 오마이뉴스 (2008.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