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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현의 백제계 사찰

일본 열도의 중심부에 위치한 ‘나라(奈良)’는 일본이란 국가가 시작된 곳이다. ‘아스카시대’와 ‘나라시대’가 시작된 일본 역사의 뿌리이자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나라는 한국어로 ‘국가’라는 뜻이다. 고대 일본의 왕들이 살던 왕도가 나라라고 불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본의 지명 및 고어사전 등을 살펴보면 그 해답이 풀린다. “나라는 국가라는 뜻이다. ‘야마토’의 옛날 땅이름이며 상고시대에 이 고장을 점령하고 살고 있던 한국 출신의 사람들이 붙인 이름으로 본다”라고 전한다.

상고시대에 나라 땅을 점령하던 사람들은 바로 도래인(渡來人)이라 불리던 고대 백제인이다. 홍윤기 충남도 백제사 정책특보는 “일본의 문헌은 고대 일본의 왕도였던 나라의 지배자가 한국인이었음을 웅변으로 입증하고 있다”고 역설한다. 고대 백제인들의 또 다른 ‘나라’, 그 안에는 시공을 초월해 백제의 혼과 얼이 살아 숨쉬고 있다.

일본의 고도, 나라는 그 자체가 고대 백제와 일본의 교류사를 펼쳐 놓은 박물관이다. 그 중에서도 방문객을 압도하는 것은 기나긴 세월 속에서도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웅대한 규모의 사찰들이다. ‘한류’의 원조인 고대 백제의 일본 진출이 불교 전파로부터 시작됐고 그 역사(役事)가 백제인의 손길을 거쳐 ‘품격’을 완성했다는 점을 나라현의 백제계 사찰들은 묵묵히 웅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라땅의 사찰들은 낯익은 모습들이다. 무심코 눈에 들어온 사찰을 만나게 되면, 저 절은 그 어떤 백제의 숨결을 품고 있을까를 상상하게 된다.

호류지와 금당벽화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목조 건물인 호류지(法隆寺)는 고대 백제인의 혼이 배어있는 사찰이다. 노송에 둘러쌓여 고색창연한 위용을 뽐내는 호류지에 들어서면 백제 장인의 톱질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장중하면서도, 단아하고 우아한 기품까지 빚어내고 있는 경내의 건축물들은 백제인의 정서가 묻어난다. 중국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다시 재창조한 뒤 왜에 전파했던 백제의 혼이 14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애잔하게 가슴 속으로 파고 든다.

호류지는 고구려승 혜자와 백제승 혜총으로부터 불교를 배우고 일본 불교를 증흥시킨 쇼토쿠태자(聖德太子)가 부친인 요메이 일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607년 지었다. 587년 요메이 일왕이 병석에 눕게 되자 쇼토쿠 태자가 아스카에 있던 백제인 건축가들을 불러 장장 17년의 공사 끝에 창건했다고 전한다.

호류지는 금당(金堂)·오중탑(五重塔)을 중심으로 하는 서원(西院)과 몽전(夢殿)을 중심으로 하는 동원(東院)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국보급을 비롯 중요 문화재만도 2000여점에 이른다. 목조건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층목탑(높이 31.5m)과 금당은 백제 장인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보여주는 백미로 꼽힌다. 오층목탑은 부여 정림사의 오층석탑과 닮은 꼴이면서도 충남도가 부여 백제역사재현단지에 재현해 놓은 오층목탑과도 같은 형태다. 일본내 사찰의 원류라고 생각해서일까. 일본인 관광객들은 백제역사재현단지의 왕궁과 능사 및 오층목탑을 관람한 뒤 한결같이 “놀랍다” “굉장하다”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호류지의 금당은 고구려 스님인 ‘담징’의 벽화로 유명하다. 경주 석굴암, 중국 운강석불(雲崗石佛)과 함께 동양 3대 예술품으로 꼽혀 왔지만 가슴 아프게도 현재의 금당 벽화는 모사품이다. 원래의 금당 벽화는 지난 1949년 화재로 불에 탄 채 호류지의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호류지는 일본 삼대 목조 국보급 불상 중 백제관음상과 구세관음상도 보유하고 있다. 홍윤기 충남도 백제사 특보에 따르면 이 백제관음상과 구세관음상은 백제 위덕왕(威德王)이 왜 왕실로 보내준 것이라고 한다. 당시 위덕왕과 왜 왜 왕실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으로 건너가 쇼토쿠태자의 스승이 된 아좌태자(阿佐太子)가 위덕왕의 아들이고 아좌태자가 그린 쇼토쿠태자의 초상은 일본은 국보이다. 일본 각지에서 일본인들이 호류지를 찾는 것은 높이 228cm의 녹나무로 만든 이 백제관음상을 보기 위해서다. 구세관음상 역시 녹나무 불상이다. 이 두 관음상 앞에 서면, 8등신의 날씬한 몸매와 우아하면서도 아름다운 자태, 자비가 넘치는 표정에 절로 매료된다.

도다이지

나라현 나라시의 도다이지(東大寺) 역시, 백제인의 혼이 서린 사찰이다. 도다이지는 쇼무천황(聖武天皇)이 세운 절로 백제인 행기(行基, 668-749) 스님과 양변(良弁, 689-773) 스님이 불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행기 스님은 백제 왕족의 자손이고 양변 스님은 백제의 학자인 아직기(阿直岐)의 후손이다. 도다이지에는 두 스님을 모신 행기당과 개산당(開山堂)이 있다. 도다이지의 한국어 안내책자에는 행기, 양변 스님이 동대사의 창건에 가장 노력을 많이 한 인물로 소개돼 있다.

도다이지 경내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중층의 남대문을 통과하게 되고 역시 중층인 중문을 거치면 대불전이 나오고 그 안에 조대까지 포함해 18m에 달하는 대불을 볼 수 있다. 대불전을 나서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행기당, 행기당 뒤로는 개산당이 나온다.

도다이지는 세계 최대의 금동불상인 비로자나대불(신체 높이 14.98m)이 749년 완성됐고 752년에는 대불을 모신 대불전이 건립된다. 이어 서탑과 동탑, 승방 등 칠당가람(七堂伽藍)이 순차적으로 세워진다.

일본 불교 문화의 상징으로 추앙받고 있는 비로자나대불은 그 웅장한 규모에 압도되고 만다. 인자하면서도 위엄이 가득 서린 표정에서 절로 머리 숙이게 된다. 그러면서 7년 간에 걸처 비로자나대불 제작에 나섰던 백제인의 집념과 끈기를 배운다. 이 대불의 주조에 앞장섰던 이는 다름아닌 백제인 조불사 국중마려(國中麻呂)다.

그외의 백제계 사찰

일본 나라 땅에는 호류지와 도다이지 외에도 백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찰들이 즐비하다. 마치 고대 백제의 불교문화를 옛 백제의 고도였던 공주와 부여에서 이 곳으로 옮겨 놓은 듯하다.

도다이지를 마주보듯 나라시의 서쪽에 위치한 사아다이지(西大寺) 역시 백제인 건축가들이 780년에 완공한 절이다. 이 곳에는 백제인 대승, 행기 스님을 기리는 행기보살좌상 등 국보급 문화재들이 가득하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고찰인 아스카데라(飛鳥寺)는 백제의 승려와 사공(寺工), 와박사(瓦博士) 등 이 건립한 절. 고대의 화려한 자태는 찾아볼 수 없지만 백제의 기상과 품위를 간직하고 있다. 나라시내의 약사사(藥師寺)는 행기 스님이 출가한 사찰. 경북 구미의 금오산 있는 약사사와 명칭이 같은 이 절의 국보 약사삼존상(藥師三尊像)은 백제 계열의 불상 조각가가 만든 것으로 알려진다.

나라시의 동쪽에는 백제 또는 신라계 귀족으로 알려진 후지와라노 가마타리(藤原鎌足) 가문의 사찰이 있다. 국보 문화재만 26점이 소장된 고후쿠지(興福寺)다. 이 절의 오층탑은 높이 51m로 일본에서 두 번째로 높다. 나라의 또 다른 사찰인 다이안지(大安寺)의 본래 이름은 구다라대사(百濟大寺)였다. 그 이름의 기원만 봐도 백제의 흔적이 물씬 묻어난다.

나라현청이 만든 한국어 홈페이지에선 고대 한·일의 문화 교류를 이렇게 압축하고 있다. “여러분은 처음 와 본 곳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정겨움을 느낀 점은 없습니까?” 그러면서 “그것은 한국 등의 옛 문화를 배운 지역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밝힌다. 백제 등 고대 한국으로부터 문화 전파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그러나 단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나라현은 고대 일본의 평성(平城)천도 1300년을 기념해 2010년에 ‘평성(平城) 천도 1300년제’라는 대규모 행사를 연중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 중국 등 고대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중심 국가들이 참여하는 행사로 다양한 국제행사를 개최하기 위해 평성궁을 재현하는 대규모 행사장도 새로 만들고 있다. 한국, 중국으로부터 문물을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자신들이 주도하는 교류의 장을 펼치고자 하는 야심이다.

고대 백제는 중국의 문물을 받아 들이고 이를 독특한 문화로 재창조해 왜 등에 전파한 문화의 수입, 유통지이자 생산지이고 공급지였다. 일본 속의 백제 혼을 재정립하고 이를 통해 백제문화 세계화와 백제 정신의 선양은 물론 고대 백제문화를 통해 새로운 국제교류의 지평을 여는 것이 백제 후손들에게 역사적 과제로 부여되고 있다. 출처: 대전일보 (2009.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