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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기악무를 전수한 백제인 미마지

내년 세계대백제전(9월 18일-10월 17일)에는 특별한 이벤트가 펼쳐진다. 모두 8만여개의 미마지(味摩之) 탈이 축제에 활용될 예정이고 수 만명이 참여하는 탈 퍼레이드도 선보인다. 미마지 탈은 백제인 미마지가 612년(백제 무왕 13년)에 중국 오(吳)나라의 기악무(伎樂舞)를 배워 일본에 전할 때 쓰던 탈이다. 14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백제인에 의해 전해진 일본 가면극의 원조 탈이 화려하게 백제의 고도에서 부활하는 것이다. 그러나 백제인 음악무용가 미마지의 자취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일본의 몇몇 고문헌을 통해 그 흔적을 더듬을 수 있을 뿐이다. 당시 사용하던 탈들은 나라현의 왕실 유물 창고인 쇼소인(正倉院)에 있지만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공개되지 않고 있다. 미마지는 기악무를 배워 왜 일본으로 갔고 그의 활동 무대는 어디였을까.

미마지에 대한 기록은 일본서기(日本書記)에 등장한다. “스이코 천황 20년(612, 백제무왕 13년)에 백제 사람 미마지가 귀화했다. 이 사람은 오나라의 기악무를 배웠다고 하므로 사쿠라이(櫻井)에 살고 있고 소년들을 모아서 기악무를 가르치게 하였다. 이 때 마노 오비토데시(眞野首弟子)와 이마키노아야 히토사이몬(新漢濟文) 두 사람에게 그 춤을 배워서 전하도록 하였다. 이것이 지금 오치노 오비토, 사키타노 오비토의 조상이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미마지의 첫 활동 무대인 사쿠라이는 일본 나라현 나라시의 남동쪽에 있는 전원지대다. 고대의 고분 등이 많이 남아있는,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다. 사쿠라이시의 기념관에는 백제의 영향을 받은 유물들도 적지 않다. 고대 백제인들의 발길이 나라 땅을 지나 사쿠라이에도 미쳤음을 방증케 한다. 보다 놀라운 것은 사쿠라이시(市)에는 ‘토무대(土舞臺)’라는 이름의 미마지의 기악무 전수지가 실제로 보존되고 있다.

토무대를 찾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쿠라이시 공무원의 안내를 받았지만 그 공무원조차도 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있었다. 결국 사쿠라이시 지도를 보며 일본의 전형적인 산등성이 주택가를 30여분 헤맨 끝에 비로소 토무대의 현장을 찾아낼 수 있었다. 토무대는 비교적 평탄한 지역으로 이뤄진 사쿠라이시의 중앙부에 위치한 구릉의 정상부에 있다. 이 곳에서 보면 사쿠라이시가 한 눈에 조망된다. 마치 공주의 공산성이나 부여의 부소산성에서 고대 백제의 시가지를 둘러보는 느낌이다. 남쪽으로는 아베산으로 열결된다. 인공의 무대가 아닌 자연적인 무대로는 최고의 지형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옛날 미마지는 일본의 소년들을 모아놓고 사방으로 탁 트인 사쿠라이시를 굽어보며 기악무를 가르쳤으리라.

주택가를 벗어나 구릉 정상부의 숲 속에 위치한 토무대는 그러나 황량할 따름이었다. 사쿠라이시 문헌에 따르면 ‘스이코 일왕시대에 섭정을 하고 있던 쇼토쿠 태자가 미마지를 초대해 기악무를 가르치게 하고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국립연극연구소와 국립극장을 설립한 장소’라고 전하고 있지만 옛 시설들은 자취를 찾을 수 없다. 1000여㎡ 공터에는 이 곳이 토무대임을 알리는 표석 만이 1400년 전의 역사를 간신히 지탱하듯 서 있다.

사쿠라이시의 토지대장에서 토무대라는 명칭이 나와 있지만 이 곳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근대 이후라고 한다. 사쿠라이시의 향토사학자들이 각종 문헌의 고증가 연구를 통해 미마지와 토무대의 재조명에 나서면서 알려지게 됐다. 지난 1972년에는 이 곳에서 사쿠라이시 주관으로 미마지 현창식이 열렸고 이후 해마다 10월에는 기악을 재현하는 현창회가 열리고 있다. 사쿠라이시 관계자는 “토무대는 일본 예능이 시작된 곳”이라고 한껏 추켜 세운 뒤 “1972년 현창식에서는 일본의 유명 예능인들이 참석해 참배했다”고 전했다.

미마지가 토무대에서 소년들에게 기악무를 가르치던 모습은 일본의 문헌을 통해 어렵사리 상상해 볼 수 있다. 1234년 편찬된 일본의 문화역사서인 교훈초(敎訓抄)에 의하면 기악무는 가로 잡고 부는 적(笛), 작은 장고처럼 생긴 삼고(三鼓), 심벌즈 무양의 동박자(銅拍子) 같은 악기의 반주에 맞춰 기면극을 추었다고 한다. 일본은 이 교훈초의 기록을 토대로 춤사위를 재현하고 옷감, 염색, 복식, 탈 등 각 분야의 장인을 동원해 기악 도구를 복원한 뒤 기악무 전통 공연을 펼쳐오고 있다.

오사카 시텐노지 무대강

미마지의 활동 무대는 사쿠라이시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토무대에서의 전수 활동을 모태로 삼아 각 지역을 돌며 기악무를 전수하거나 공연을 펼쳤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근거가 오사카(大阪)에 남아 있다. 오사카의 시내 중심지에 있는 시텐노지(四天王寺) 경내에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무대강’(舞臺講)이라는 이름의 돌로 만든 무대가 있다.

시텐노지는 쇼토쿠 태자(574-622)가 발원해 593년에 백제 건축가 유씨(柳氏)에 의해 세워진 사찰이다. 유씨는 오사카의 건축전문회사인 ‘곤고구미(金剛組)’를 설립한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시텐노지는 사찰의 중문과 오중탑, 금당이 일직선으로 이어지고 사방은 회랑이 둘러싸고 있다. 백제 고도인 부여의 군수리 절터와 같은 양식이다. 시텐노지의 오중탑은 매우 웅장하다.

시텐노지에선 해마다 4월에 쇼토쿠 태자를 모시는 법회가 열리고 그 법회가 바로 무대강에서 거행된다. 미마지는 사쿠라이에서 뿐만 아니라 시텐노지의 무대강에서도 제자들을 배출했고 또 공연을 펼친 것이다.

미마지가 보급한 백제의 기악과 가면은 일본에서 궁중이나 불교 행사 뿐 아니라 민속놀이에도 많이 이용됐다고 한다. 불교계에서는 부처님 공양을 위해 가면을 쓰고 춤과 노래를 한 것으로 무언의 희극인 셈이다. 당시 수행자들은 고승으로 인전받기 위해 악무를 익히는 것이 필수적이었다고 한다. 미마지의 기악무가 지닌 중요성을 짐작케 한다. 기악무는 일본 고전 악무의 하나인 기가쿠(伎樂)를 의미한다. 기악무가 기가쿠라는 고유명사로 바뀌었다.

일본에서는 기악무 복원이 일찌감치 이뤄져 왔다. 지난 2004년 제50회 백제문화제에선 일본 텐리(天理)대 아악부의 백제기악(百濟伎樂) 공연이 열려 한국 사람들을 경탄케 했다. 교훈처의 기록을 토대로 지난 1970년대 복원을 마쳤고 해외 공연도 활발하다.

일본보다 한 발 늦었지만 우리도 최근 백제 기악의 복원과 공연활동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 1996년부터 일본의 도쿄박물관과 정창원 등에 보관된 대표적 기악탈을 현지 답사를 통해 실측해 복각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2003년에는 백제기악전승보존회가 구성돼 활동하고 있고 2003년 ‘백제기악 복원을 위한 방안 모색‘을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리는 등 학술행사도 마련돼 왔다. 현재 복원된 기악 탈은 20여종에 달한다. 지난해 9월에는 ‘백제기악전승보존회’가 파리, 런던 등에서 순회공연을 갖기도 했다.

내년 대백제전에서의 탈 퍼레이드는 미마지의 혼과 장인정신을 기린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부여된다. 그러나 기악무를 백제의 것으로 계승하고 보전하기 위해선 단지 탈이 아니라 기악과 춤에 이르는 복원과 함께 대중화에도 힘써야 한다. 1400년 전에 일본 사쿠라이시의 토무대를 휘감았던 춤사위가 2010년 대백제전에서 다시 신명나게 펼쳐지길 기대한다. 출처: 대전일보 (2009.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