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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촌교회(鎭村敎會)

주문도에는 개신교 예배당으로는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 할 수 있는 건축물이 남아 있다. 영생학교 후신으로 공립학교가 된 서도초등학교를 끼고 야트막한 언덕길을 오르면 단아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923년 여름에 건축되었는데도 목재와 기와, 마루와 벽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뿐아니라 지금도 주일마다 서도중앙교회 교육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역 건물이다.

주문도 교인들이 일인당 일원씩 헌금하여 7천원을 마련하고 삼산 목수 이경재를 데려다 지은 이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7칸, 도합 35칸 되는 전통 한옥 형태로 되어 있다.

" 그때 목재며 기와를 강화 본도에서 배로 실어왔는데 응개지나루터에서 이곳까지 소 달구지로 실어 날랐답니다. 그런데 그 길이 얼마나 험했는지 달구지를 끌던 황소 두 마리가 죽어나갔답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이 교회를 소 두 마리 제물삼아 지은 교회라 하지요."

진촌교회를 보면 온수리 성당처럼 단층 일자형에 조선 기와를 올려 산자락에 앉힌 건물에서 느낄 수 있는 포근함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대문 기능을 하는 종탑을 별개 건물로 세운 온수리 성당과 달리 진촌교회의 예배당은 대문이 없이 예배당 건물 입구 쪽에 종탑을 붙여놓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앞에서 보면 2층 누각 형태의 성공회 강화성당과 흡사하다. 종탑 지붕은 축소된 솟을지붕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본당 뒤쪽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처리했다.

이 건물도 제대로 감상하려면 뒤쪽 언덕으로 올라가야 한다. 예배당 위쪽, 옛날 영생학교가 있던 자리엔 1975년에 교육관으로 지었다가 지금 예배당으로 사용하는 붉은 벽돌 '성곽형'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전형적인 도시개발 시대 모형이다. 성냥곽 같은 새 건물이 들어서면서 옛 진촌교회 한옥 예배당이 헐려나가지 않은 것이 그저 고맙기만 한데, 새 건물을 지으며 옛 건물을 허물지 않아도 될 정도로 박씨 집안에서 교회에 넉넉한 토지를 기증한 덕이기도 하다.

" 교회 역사책을 보면 1921년에 어른들이 '십일조회'라는 것을 조직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때 저희 순병 할아버님 같은 분은 소득의 십일조뿐 아니라 재산의 십일조를 드리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신 재산의 십분의 일에 해당하는 땅을 교회에 바친 것이지요. 지금 예배드리는 교회 터도 그렇게 바친 것입니다."

재산의 십일조로 바친 땅 위에 세워진 새 예배당에서 옛 건물을 내려다보면 멀리 살꾸지 갯벌과 서해다가 시원하게 들어오는 것이, 마치 교회 건물이 해안에 정박해 있는 고깃배 같다. 실제로 예배당 건물이 강화성당처럼 배 모양을 하고 있는데 종탑 부분이 뱃머리, 뒤쪽의 강단 있는 부분이 고물인 셈이다. 바다와 배를 생활터전으로 삼고 있는 섬 사람들의 신앙이 짙게 배어 있는 건물이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면 온수리 성당 느낌이 든다. 개신교 예배당 건물로는 드물게 보이는 전형적인 '바실리카 양식'을 취하고 있다. 중앙회중석과 양쪽 회랑을 구분하는 기둥이 열두 개가 있으며 들보와 중인방, 상인방은 부드러운 곡선을 살려 자연스런 멋을 담고 있다. 천장의 대들보와 서까래도 흰 회벽에 그대로 드러나게 처리하여 시원한 느낌을 준다.

3층으로 이루어진 강단은 강화성당 것을 축소한 형태이면서도 불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단모양을 하고 있다. 성당에서 제대(祭臺), 불당에서 불상이 있을 자리에 설교 강대가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런데 강대 뒤쪽으로 십자가 모양의 유리 창문이 쌍으로 있어 영 어색하다. 아니나다를까? 섬에 전깃불이 들어오기 전인 1960대, 예배당 안이 너무 어두워 채광용으로 벽을 헐고 만든 것이란다.

눈물의 섬 강화이야기

출처: 한국 기독교 문화유산을 찾아서 1권. 눈물의 섬 강화이야기. 대한기독교서회(2002년) .

저자 이덕주: 충북충주 출생. 감리교신학대학교 및 동 대학권 졸럽(신학박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원(종교 전공) 수료. 기독교문사'기독교대백과사전' 국내자료부장. 신암교회 광서교회 등지에서 목회.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학예실장. 감리교신학대학교 초빙교수.

예배당 안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열 두 기둥 외에는 넓은 공간을 가로막는 것이 없다. 그러나 예배당 오른쪽 벽 윗 들보에 걸려 있는 편액(扁額) 셋이 보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옛 조선 시대 누각이나 정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누정기(樓亭記: 시인아니 묵객이 정자나 누각의 유래 및 감상을 적은 글) 를 담은 편액들이다.

국한문 혼용으로 된 편액 중 첫 번째 것은 1926년 영생학교 교사 신원철(申元徹) 과 모태정(牟泰貞)이 지은 "영세기념사"(永世紀念辭)로 2400원을 들여 교회 부속 영생학교 교사를 신축한 내역을 적고 있다. 두 번째 것은 1927년에 윤성심(尹聖心)이란 전도부인이 50원을 헌금하여 교최종을 마련한 것을 기념해 당시 담임자 김성대 목사가 쓴 기념서다.

진촌교회가 처음 시작될 때 평북 출신으로 이곳에 들어와 살던 윤기현(尹基鉉)이 종 하나를 기증했는데, 세월이 흘러 종이 깨져 소리를 내지 못하자 딸이 새 종을 기증한 것이다. 소리가 맑아 멀리 매음도에서도 들렸다는 진촌교회 종은 일제 말기 공출당해 사라지고 편액만 남아 부녀의 신앙을 증언하고 있다. 세번째 것은 최근 것으로 1993년 서동중앙교회 창립 100주년을 맞아 1960년대 말 이곳에서 시무하던 이기삼 목사가 지은 회두시, " 서도중앙교회백주년기념 축시" 다. 경치 좋은 강이나 계곡에 선비들이 모여 풍류를 즐기던 고풍스런 정자나 누각에 걸려 있을 편액을 예배당 안에서 발견하였을 때 그 감격이란!

그래서 그런지 진촌교회는 낙향한 선비가 풍류를 즐기는 정자 같은 분위기다. 술집도 다방도 없는 것이 속세를 떠나 별천지에 있는 것 같고, 저 멀리 바다를 내려다보며 앉아 있는 예배당은 오고가는 인생의 의미를 반추하는 도인 같기만 하다. 이처럼 안팎으로 토착 교회의 멋을 한껏 머금고 있는 진촌교회 예배당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 진촌 교인들이 덩ㅄ이 고맙다. 스쳐 지나가듯 급하게 방문한 여행객에게 정성스레 차려 내온 박상인 장로님 댁 밥상에 양념 없이 데쳐낸 새우 맛도 잊을 수 없다.

※ 이글을 쓴 직후인 1997년 8월에 서도중앙교회 한옥 예배당 건물은 인천시 지방문화재 14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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