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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

한국교회 100년 전 모습과 현재, 글: 장동수 목사

* 성경을 읽으면서

선교 초기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모습을 살펴보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특히 한국 기독교인들이 난생 처음 성경을 접하면서 보인 신앙 형태들은 무척 독특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의 개종 대부분은 ‘예수교’의 도道를 기록한 성경을 읽으면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기존 신앙 체계인 유교의 한계를 깨닫고, 개인과 민족의 소망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한국인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교인이 되었고 신앙이 성숙해져 갔다. 전도가 이루어진 것도 물론이다. 경전에 익숙하고 경전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한국 사람들-, 글 읽는 것을 귀하게 생각했던 민족에게 성경은 가장 큰 복음의 통로가 되었던 것이다.

* 강화 기독교인들의 독특한 성경 이해

한국 사람들의 ‘성경 이해와 실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이 글에서는 특별히 ‘강화 지역’의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당시 강화 선교를 관리하고 있던 존스 선교사는 선교 6년만에 10개 교회를 이룩한 강화 교인들의 성경 중심적인 신앙 열정에 대해 ‘1901년 선교 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기독교 국가에 있는 교인들은 성경이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국에는 서양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성경관이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성경이 아주 귀해 성경 같은 책을 손에 넣는다는 것은 큰 상을 받는 것과 같이 여겨지며, 성경을 얻은 사람은 그것을 공부하는 데 매진하고 그 결과가 가장 유익한 것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강화 교인들이 성경 중심적이었다는 것은, 단지 경전을 공부하는 데에 열심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말씀 그대로 실천하려는 신앙이었다는 것을 존스 선교사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은 종종 성경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엉뚱한 해석을 하곤 하는데, 언젠가는 그리스도께서 맹인을 고치실 때 진흙을 개어 바르셨다는 기사를 읽고 그대로 해서 오늘에도 그런 이적을 재생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종종 이 같은 ‘문자적 해석’으로 교인들은 아름다운 행위를 하곤 했는데, 그 결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전혀 배치되지 않습니다.”

* 은혜 받은 자의 아름다운 실천 1 - 종순일의 빚 탕감

존스 선교사는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문자적 해석에 따른 ‘아름다운 행위’를 보고하고 있는데, 그 주인공은 홍의교회 초기 지도자이면서 강화 남쪽 길상에 복음을 전한 ‘종순일’이다.
‘존스 선교사의 선교 보고서’와 ≪대한크리스도인회보≫에 이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우리 속장 중에 재물에 여유 있는 이가 있습니다. 하루는 성경을 읽다가, 주인에게 큰 빚을 지고 있던 종이 주인으로부터 빚 탕감을 받은 후에 자기 동료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아 불의한 종이라 꾸중을 듣고 책망 받은 이야기(마 18:23∼35)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시켰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주인이고 자신은 무서운 죄의 빚을 하나님께 지고 있었는데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용서함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동료들이 있어, 그가 하나님께 진 빚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지만, 동료들이 그에게 진 빚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경고하는 바는 바로 동료들의 진 빚을 탕감해 주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에게 돈을 빌려간 사람들을 모두 자기 집으로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성경 이야기를 들려준 후에 자기 생각을 밝혔습니다. 그는 채무자들에게 이제는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선언하고는 그들이 놀란 눈으로 지켜보는 앞에서 차용 증서들을 꺼내 불태워 버렸습니다.”

* 은혜 받은 자의 아름다운 실천 2 - 김씨 부인의 노비 해방

이와 유사한 경우를 강화 ‘잠두교회’(현 강화중앙교회)의 ‘김씨 부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잠두교회 담임이었던 김우제 전도사는 ≪신학월보≫1)를 통해 김씨 부인의 신앙을 ‘우리 나라에 드문 일’이란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다.

“강화 읍내에 김씨 부인은 년방 팔십에 자녀와 친속이 업고 홀노 과거하야 다만 복섬이라 하는 녀종을 다리고 세상을 지내더니 일일은 예수씨의 복음을 듯고 스사로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주를 밋기 작정한 후 언문을 알지 못함으로 성경을 보지 못하야 주야 근심하고 날마다 언문을 힘써 공부하야 나종에 언문 성경을 보기에 이르러 성경 뜻을 상고함에 종 두는 거시 또한 큰 죄인줄을 깨닷고 갈아대 우리의 주인은 하날에 계시고 우리는 다 한 형제라. 내가 엇지 감히 하나님 압헤서 주인이 되여 죄를 범하리오 하고 하로날은 교중 형제를 청하야 그 종 복섬이를 불너 안치고 마태복음 十八장 十五절브터 二十절까지 읽은 후에 조흔 말삼으로 몇 마듸하신 후에 종문서를 불사르고 그 종의게 닐너 갈아대 내가 금일브터는 너를 종으로 알지 안코 내의 딸노 아노라 하고 주일마다 한가지로 례배당에 열심으로 다니시니 종되던 녀자가 깃분 마음이 충만하야 친어마니갓치 섬기며 날마다 왼 집안이 화목한것치 충만하니 하나님께 만만감사할 일이로다. 우리 대한에 비복을 둔 사람들은 이 부인을 본바다 비복들을 노아주고 자기도 노힘엇기를 바라노라” ≪신학월보≫ 1903.7.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성경을 읽는 것에만 열심을 기울인 것이 아니라 깨달은 즉시 실천에 옮긴 살아 있는 신앙을 만날 수 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면서 자기에게 종을 두는 것이 죄인줄 깨닫고 그 즉시 종 문서를 불살라 없애고 종을 해방시킨 80세 할머니의 실천은 정말 당시에 우리 나라에 ‘드문 일’이었다. 기존 유교에서도, 불교에서도 보지 못했던 실천적 신앙을 통해 기독교는 봉건적인 사회 구조를 깨뜨리면서 민중 속에 뿌리를 내렸던 것이다.

* 은혜 받은 자의 아름다운 실천 3 - 박두병, 순병 형제의 빚 탕감

아름다운 실천 사례는 주문도라는 섬의 ‘진촌교회’(현재 서도중앙교회)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기독신보≫는 진촌교회의 초기 교인 중에서 박두병·박순병 형제의 모범적인 신앙 생활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
당시 교회에는 아버지의 빚 2천 원을 떠맡은 한 사람이 있었는데,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노동하여 8년 동안 16원의 돈을 모았다. 그러나 갚아야 할 빚에 비하면 너무도 적은 돈이었다. 아버지의 빚을 갚지 못하는 것이 늘 마음에 부담이 되었던 그는 박두병 권사의 집에서 열린 기도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 때 일어난 사건을 ≪기독신보≫2)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그 채무자가 자기 일가집 빗에 대하야 말하기를 내가 아모리 갚흐랴고 힘을 쓰고 모흐대 八년간에 겨우 十六원을 모왓스니 수천원을 엇지 갑흘는지 쥬야로 마암이 편치 못하니 채권쟈 되신 일가 어룬은 이일에 대하야 쳐분하야 달나하거늘 박씨가 졸연한 이 문뎨에 대하야 무엇이라 대답할 수 업셔 묵묵히 잇슬새 죵순일 목사가 셩경 마태복음 十八장 二十졀을 보고 해셕하매 박씨의 샤뎨 순병씨가 그 형님을 대하야 말하기를 오날날 이 쟈리에셔 이 문뎨 난 것이 도시 하나님의 뜻인듯하니 형님이 그 돈을 아니 밧을지라도 당장 곤난을 당할터이 아니오니 탕감하여 주셔 밧아야 하겟다 하는 마암과 갑하야겟다 하는 근심이 서로 잇셔 기도하는 때에 항샹 거리낌이 업게 하면 하나님께셔 더욱 아람답게 역이시겟다 하매 박씨가 즉시 즐거온 마암으로 쾌히 허락하야 二천여 원을 밧지 아니하겟다 하매 그 아오 순병씨도 맛을 것 잇는 것 六十여 원을 탕감하며 내 형님은 수쳔 원도 탕감하엿거던 하물며 몃 푼 아니되는 내것을 밧겠느냐 하고 밧지 아니하기를 셩언하매 채무쟈의 깃버함은 물론이어니와 좌중의 여러 교우들의 깃버하며 챤셩함은 과연 한 닙으로 다 말하기 어려웠더라.”

이 기도회를 인도하고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20년 전에 채무자들의 빚을 모두 탕감해 주고 재산을 팔아 교회에 헌금하고 아내와 함께 복음 전도자가 된 ‘종순일’ 목사였다. 종순일 목사는 자신의 경우처럼 실천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다. 단지 자신이 읽고 깨달은 말씀, 깨닫고 실천하게 했던 말씀, ‘마태복음 18장 21∼35절’을 읽어 주며 해석해 주었을 뿐이다. 결국 종순일 목사로 하여금 실천하게 했던 그 말씀은 박두병 형제에게도 역사하셨다.

오늘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100년 전 한국 기독교인들은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 그 말씀을 곧 지금 나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겼다는 점이다.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합리화시키기 좋아하는 현대 기독교인들이 배워야 할 선조들의 귀한 신앙이 아닐까?
말씀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이러한 사례들을 ‘문자적인 이해’의 수준으로 평하기 이전에,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실천하는 믿음이 우리에게도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3)

|1| <신학월보>는 1900년 12월 존스 선교사를 발행인으로 하여 창간한 감리교 잡지로, 월간으로 발행하였으며 감리교와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소개하고 교회 소식을 전달하는 내용을 담았다.

|2| <기독신보>는 1915년부터 1933년까지 발행한 신문으로, 감리교의 <그리스도회보>와 장로교의 <예수교회보>가 연합하여 만든 신문이다.

|3| 더 많은 이야기들은 [눈물의 섬 강화 이야기](이덕주, 대한기독교서회)를 참고.

출처: 기독교 대한감리회(http://www.kmcedu.or.kr/webZine/webzine_detail.php?idx=5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