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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의 심성을 망가뜨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 첫해, 댓글공작을 일삼던 국가정보원이 정상회담 회의록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으며 정치 전면에까지 나서는 것을 보며, 정권을 교체해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의 대처 방식을 보며, 이 정권 아래서도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하지만 아무래도 진상을 제대로 밝히려면 정권을 교체해야겠구나, 싶었다. 정권 내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우병우 민정수석 등의 이름이 함께 언급되는 이런저런 검찰 수사들을 보며, 어서 정권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다, 싶었다.

메르스 사태 속에서 허둥거리기만 하고 제대로 대처를 못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며, 능력이 아니라 오직 충성에 대해서만 보상하는 정권을 어서 교체해야 무능해진 행정 기능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온갖 행정명령으로 뒤집고 왜곡하는 일을 통제하려는 국회법 개정안을 거부하고 집권당 원내대표(유승민)를 숙청하는 대통령을 보며, 빨리 정권을 바꿔서 국회의 권능과 행정부 심사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권이 대학을 황폐화시키는 정도가 도를 지나쳐 마침내 그것에 항의하기 위해 한 대학교수가 자살을 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정권과 교육부는 여전히 대학을 쥐 잡듯 괴롭히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정권을 바꿔야 이 짓이 끝나겠구나 싶었다. 대다수가 반대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모습을 보며, 어서 정권을 바꿔서 “혼이 비정상인” 대통령의 역사관이 청소년들에게 스며드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경찰이 민중 총궐기 대회에 참여한 백남기씨를 물대포로 무자비하게 쓰러뜨리고 그를 구하려는 사람들뿐 아니라 앰뷸런스를 향해서까지 물대포를 쏘는 동영상을 보게 되니, 어떤 증오의 감정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정권을 바꿔야 한다는 마음은 더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증오의 감정이 불붙고 나자, 정권을 바꿔서 이뤄야 할 목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을 막아야 한다는 소망은 뒤로 물러나고 대신 국정원 내부를 숙청하고 확실하게 복종을 얻어낸 다음 보수 세력을 향해 겨눌 창끝으로 써야 한다는 갈망이 피어났다. 그리고 같은 갈망에 불 지펴진 생각들이 연이어 떠올랐다.

왜 애써 권력을 잡고서는 검찰의 기소권 남용을 막고 정치적 중립을 이루어야 하는가? 우선 남용된 기소권이 어떤 것인지 보수 세력이 절절하게 체험할 기회부터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폐기해야 하는가?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빠짐없이 그리고 상세하게 밑줄 죽죽 그어서 가르치는 국정 교과서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시도에 저항하는 보수단체의 집회나 새누리당의 장외 투쟁에 대해서도 경찰 차벽을 칭칭 둘러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지난 민중 총궐기 때와 똑같은 농도로 최루액을 넣은 물대포를 똑같은 세기로 쏘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집회를 막기 위해 물대포를 쏘고 집회에 참여한 시민을 아이에스(IS) 테러범 취급하던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고, 적어도 국정원, 검찰, 경찰 그리고 법원만은 엄정하게 중립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상대의 몽둥이를 빼앗아 휘두르고 싶은 이 마음이 그들을 교화하려는 의도로만 충전된 것은 아니다. 거기엔 복수의 감정도 흐르고 있으며, 복수의 달콤한 즙은 생각만으로도 우리 혀를 촉촉이 적신다. 밀려들던 달콤함은 이내 두려움으로 변했다. “참 나쁜 대통령”의 가장 나쁜 힘은 바로 이렇게 내 심성을 뿌리부터 더럽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출처: 한겨레: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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