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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와 일본유학

대학교 4학년이었던 1997년 11월 3당합당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민주자유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의 전신) 출신 김영삼 정권에 의하여 IMF 사태가 터졌다. 서류전형과 2차면접까지 치르고 합격한 첫 회사는 한 달동안 연수까지 마친 후에 입사취소라는 통보를 해 왔다. 결국 50여명의 입사 동기 중에서 몇 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는 다시 취업준비생이 되었다. 홧김에 입사동기들과 술을 마시다가 만취상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했었고 합의금으로 받은 700만원으로 방배동에 월세방을 구해서 다시 취업준비를 시작해 해운회사를 관리하는 협회에 들어갔다.

IMF시대의 회사 분위기는 처참했다. 내 위에 차장이 한 명 과장이 두 명 있었는데, 차장은 회사를 잘리지 않기 위해서 모욕적인 언행을 참아가면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그 밑에 있는 과장 둘은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눈치를 보며 개같이 일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회사생활에 비젼이 없음과 회의를 느꼈다. 1998년 봄이 되면서 회사 사정이 점차 어려워지면서 입사 1년이 되는 시점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에나 가봐야 겠다고 결심하고 종로에 있는 일본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1년이 되어야 퇴직금이 나오기 때문이다. 일본어학원에서는 NHK 뉴스와 '마츠시마나나코'가 나오는 'Great Teacher Onizuka [GTO]'라는 드라마를 공부했던 기억이 나는데 일종의 자발적 사교육이었던 이 때가 일본어를 가장 재미있게 배웠던 시기이기도 하다.

사람들 중에는 김영삼 정권이 터트린 IMF사태를 김대중 대통령 때 일어난 것으로 오해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IMF사태는 김영삼 정권 말기인 1997년 11월에 터졌고 12월에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금 모으기를 하는 등 그 뒷처리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군사독재의 잔당 들에 의해 발생한 경제위기 때문에 내 생애 처음으로 외국이나 가 봐야 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는데, 아마도 경제위기 없이 무난하게 회사생활을 할 수 있었다면 일본에 갈 마음은 안 생겼을 것이므로 IMF 경제위기가 내 생애 가장 큰 모험인 일본유학을 결심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어떤 의미에서는 은인이므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유학원

5월 쯤에 회사를 퇴사하고 강남역 주변에 있는 한 유학원을 통해 일본유학을 알아보게 되었다. 지금은 없어졌겠지만 일본유학을 위해서는 내 통장의 잔고가 천만원 이상 있어야해서 수수료를 내고 통장잔고증명서를 만들었다. 비자신청을 위해서 졸업한지 20년이 지난 국민학교에 가서 학생기록부를 떼야만 했는데 덕분에 그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의 가정환경도 알 수 있게되었다.

유학원에서는 도쿄에 있는 일본어학교를 추천해 주는데, 일본어학교와 기숙사가 도쿄의 중심에 있을수록 가격이 비싸고 중심에서 벗어날수록 가격이 싸다. 나는 도쿄 신주쿠(新宿)와 이케부쿠로(池袋) 사이에 있는 일본어학교를 선택했는데, 기숙사는 도쿄 외곽인 닛포리(日暮里)에서도 버스를 타고 5분 정도 더 들어가는 곳에 있었다. 일본어학교와 기숙사의 거리가 멀어서 시간도 많이 걸리고 교통비도 많이 들었다. 도쿄 사정을 잘 몰랐기에 이런 어이 없는 선택을 했을 것이지만 유학원에서는 모든 것이 다 돈과 연관되므로 이 모든 것은 돈을 아끼려다 일어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