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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

일본은 전국을 말할 때 도도후켄(都道府縣) 47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말은 도쿄도(東京都), 홋카이도(北海道), 오사카후(大阪府), 교토후(京都府), 그리고 나머지 여러 현(縣)들을 말한다. 이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도쿄도(東京都)는 한국의 옛 서울특별시와 같은 인상이고, 오사카후(大阪府)와 교토후(京都府)는 부산 직할시와 같은 개념이 아닌가 한다. 이 글에서는 교토후(京都府)와 교토시(京都市)에 대해서 언급해 보고자 한다.

교토시는 11 개 구로 나누어져 있는데 인구수는 대략 147 만 명이다. 교토시를 감싸고 남으로는 오사카부와 북으로는 한국 동해안와 연결된 곳이 교토후이다. 교토후는 인구 2 만명 이상 사는 시(時)가 15 개 있고, 그밖에 시 이하의 행정단위가 11개이다. 교토시를 포함하여 교토후의 인구는 265 만 명 정도이다. 이 자료를 보면 교토후 전체 인구의 약 삼분의 이 정도가 교토시에 살고 있다.

원래 교토 서쪽 우즈마사(太秦)라는 곳에 하타씨(秦 河勝)가 살았다고 한다. 이 하타씨는 고구려 계통으로 양잠 기술을 가지고 있던 지방 토호 세력이었다. 하타씨는 서기 603 년 경 하치오카데라(蜂岡寺, 현 廣隆寺)라고 하는 절을 짓는다. 지금도 이 고류지(廣隆寺)에는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고려 불화 등 한국과 관련된 유물이 많아서 일본에 있는 한국 박물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서기 784 년 나라(奈良)에 있던 수도가 현재 교토 남쪽 나가오카(長岡)라는 곳으로 천도한다. 그런데 이곳은 수도로서 여러 문제점이 발견되어 지금의 교토 당시 헤이안(平安)으로 천도한다. 이때 현 교토 중심부의 땅은 하타씨 소유의 땅이었는데 하타씨의 승낙으로 천도가 시작된다. 비로소 서기 794 년 헤이안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일본 역사상 교토라는 말이 쓰인 것은 서기 914 년경부터이고 이전에는 헤이안(平安)이라는 말이 주로 사용된 것 같다. 그 후 1603 년 에도시대가 열리기까지 교토는 810 여 년간 일본의 수도로 군림해왔다.

교토에는 헤이안 시대 이전부터 여러 일본의 승려들이 앞을 다투어 교토 동쪽 히에잔(比叡山)에 올라 도를 닦아 여러 불교 종파를 연다. 그 후 교토에는 수많은 절이나 진자(神社)들 지어져 현재 800 개 이상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교토는 앞에서 말한 대로 수도를 옮겨올 때 일정한 계획으로 천도했기 때문에 거리가 대부분 바둑판처럼 일정한 규격으로 정해져 있다. 그리고 동쪽의 히가시야마(東山), 서쪽의 가츠라가와(桂川), 북쪽의 이와쿠라(岩倉)를 경계로 내부는 완만한 경사나 거의 평지에 가까워 자전거 타기에 적당하다.

교토의 지하철은 가라스마도리(烏丸通) 아래로 남북으로 한 선(다케다에서 고쿠사이가이칸까지)만 존재하고, 동서로는 시청이 있는 오이케도리(御池通) 아래로 동서선(니조에서 다이고)이 있다. 교토 시내 북쪽에는 가모가와(賀茂川)와 다카노가와(高野川)가 상류에서 알파벳의 와이(Y) 자 형으로 합류하여 남북으로 흐른다. 합류하여 흐르는 강은 가모가와(鴨川)라고 부른다. 가모가와(賀茂川)와 다카노가와(高野川)가 합류하여 생기는 와이(Y) 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삼각주 지형은 교토의 명당으로 예로부터 알려져 왔다. 삼각주 지형의 중심선에는 시모가모 진자(下鴨神社)가 있고 주변 마을은 교토에서 가장 값비싼 고급 주택가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풍수 지형상 여성의 음부를 상징하는 지형이기 때문에 이곳에 살면 생산과 풍요 즉 번영과 안녕을 기할 수 있으리라는 신앙에서 그러한 듯하다.

교토의 큰 길을 중심으로 중요한 간선만 살펴보면 남북으로 난 길은 동쪽 히가시야마(東山)의 시로카와도리(白川通), 히가시오지도리(東大路通), 가와바타도리(川端通, 가모가와의 동쪽 길), 가와라마찌도리(河原通), 카라스마도리(烏丸通), 호리카와도리(堀川通), 센본도리(千本通), 니시오지도리 (西大路通)등이다. 그리고 동서로 난 길은 북쪽에서부터 기타오지도리(北大路通), 이마데가와도리(今出川通), 마루타마찌도리(丸太通), 오이케도리(御池通), 시조도리(四條通), 고조도리(五條通), 시찌조도리(七條通), 구조도리(九條通), 쥬조도리(十條通) 등이다.

물론 이 큰길 사이사이에도 많은 길이 있다. 좁은 길은 일방통행으로 된 곳도 많다. 이 길들 안이나 주변에는 일본 전통 양식으로 지은 많은 절이나 진자(神社), 민가 들이 있다. 이들은 현대적인 건물이나 주차장으로 변한 곳도 있으나 전통적인 모습을 지닌 곳도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골목길에 면한 민가나 상가들은 동서의 길이가 짧고 남북의 길이가 길게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동서 길을 이용하여 출입을 편하게 하고 토지 이용의 효율을 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러한 일본식 집을 일본사람들은 `우나기베드`, 즉 `뱀장어 침대`라고 부른다.

교토시에는 여러 절이나 진자에서는 연중 크고 작은 축제가 많이 열린다. 이 축제를 다 보려면 1 년을 살아야 다 볼 수 있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도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한번쯤 수학여행으로 교토를 경험한다. 그리고 교토에서 열리는 여러 축제, 봄철 벚꽃이 필 때나, 가을 단풍철에는 일본 전국에서 관광객이 모여 든다. 그리고 교토는 일본의 전통적인 문화를 간직한 곳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져 일 년 내내 국내외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연간 교토를 방문하는 관광객 수는 1 천 만 명 정도라고 한다. 교토에서 대학을 다니는 교토 이외의 지방 출신자에게 왜 교토에 있는 대학을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일생 한번쯤은 교토에 살고 싶어서 교토에 있는 대학을 지망했다는 말도 쉽게 들을 수 있다.

[참고문헌]
존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글을읽다, 2008.5
김달수 저, 배석주 역, 일본속의 한국문화 유적을 찾아서, 대원사, 1995.

출처: 오마이뉴스 (20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