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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학행 비행기 (Transit vs Transfer)

서울 강남역 근처에 있는 유학원을 통해 도쿄 신주쿠 근처에 있는 일본어학교를 등록해서 일본유학을 떠났는데 김포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뜻밖에도 하네다공항이나 나리타공항이 아닌 후쿠오카공항에 착륙하더니 후쿠오카에서 국내선으로 하네다공항행 일본국내선으로 갈아탔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이것이 바로 트랜스퍼(Transfer)인데 각 항공사마다 중심이 되는 허브공항이 있어서 일단 허브공항으로 간 다음에 직항편으로 비행기를 갈아타고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다. 이러한 트랜스퍼는 직항편보다 조금 저렴하기때문에 아마도 유학원에서 싼 루트를 이용했던 것 같다. 참고로 Transit은 경유라는 뜻으로 항공기에서 잠기 내려서 대기하거나 바로 갈아타는 것으로 Transfer 와는 구분 된다.

이렇게 국제선을 처음 타 본 나는 내가 이용한 항공권이 트랜스퍼인지 트랜짓인지도 모르는 사이에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하네다 공항에서 리무진버스를 타고 도쿄 서북부에 있는 이케부쿠로(池袋)까지 이동했고 이케부쿠로부터는 자가용을 타고 일본으로 가기 전부터 정해져있던 숙소인 오오기오오하시(扇大橋)까지 어느 유학생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자가용을 운전한 사람은 나와 같은 유학생으로 일본에 먼저 정착한 사람으로 자동차를 구입하여 주로 한국사람들을 상대로 자동차영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일본에서 자동차까지 소유하고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일본에서 유학하는 한국 유학생들이 흔하게 선택하는 아르바이트 중 하나였다.

오오기오오하시(扇大橋)

생전 처음으로 도착한 곳이 도쿄도 아다치쿠 오오기오오하시(東京都足立区扇大橋)였다. 1층 연립주택 비슷한 건물이었는데 방이 3개에 큰 거실이 있었다. 일종의 유학생을 위한 기숙사였다. 아마도 유학원에서는 이런 시설을 기숙사라고 말했던 것 같다. 각 방 마다 3~4명 정도 합숙을 하게 되어 있어서 우리 건물에는 10명 정도의 유학생들이 함께 생활하게 되어 있었다. 아직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되는 유학생이기 때문데 저마다 가져 온 밑 반찬이 있어서 여기가 한국인지 일본인지 모를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 또한 고추장을 슈퍼마켓에서 한 통 사 왔다.

내가 이 곳에 온 것은 1999년 7월인데 일본어학원은 8월 초순 쯤에 개강하게 되어 있었다. 일본어학원이 개강하기 1개월 쯤 전에 공수하는 시스템인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1개월 사이에 많은 일 들이 벌어진다. 숙소에 배정 된 한국인 유학생들은 10명정도이다. 그런데 남자 숙소 외에도 여자 숙소에 온 여자 유학생을 합하면 15명 정도 된다. 이 사람들이 서로 동포로서 교류를 하는데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운동도 한다. 내가 기억하는 것으로는 축구도 같이 했었고 이자카야(居酒屋)에서 술도 마셨다. 여학생들은 별도의 숙소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언어와 정서적인 측면에서 소통하기 쉬운 한국 유학생들과 많이 어울렸다.

일본에서의 아르바이트

일본 유학을 하자마자 느낀 문화적인 충격은 바로 섹스산업에 대한 인식과 행태의 차이였다. 우리나라는 여성이 남성에게 성을 파는 산업이 다채롭지도 않을 뿐만아니라 인식도 좋지 않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파는 성적인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인식이 다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는 술집에서 일하면 무조건 술집여자이지만 일본에서는 술집의 경우 매춘이라는 인식 보다는 웃음과 대화 같은 서비스를 파는 서비스업이라는 인식과 제도가 일반적인 통념이다.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일본에서 술을 파는 술집에서 일 한다고해서 반드시 매춘을 연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인 차이를 알기 때문에 한국 여자 유학생들이 일본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어를 배우기도 좋고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고 시간당 인건비도 좋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 남자 유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구하기가 어렵다. 여학생들 처럼 웃음을 사 주는 일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일본에 유학했던 1999년 당시에는 한국인 유학생들이 했던 주된 아르바이트로는 찌라시를 돌리는 아르바이트, 한국 가게 특히 음식점이나 비디오 가게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배달하는 아르바이트가 그나마 손쉬운 아르바이트였다. 일본유학이라고는 하지만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사람들을 상대로하는 일을 찾게 되는 구조였다. 나도 처음에는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 네트워크를 이용해서라도 자립하고 싶어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교회에도 몇 차례 가고는 했었다. 그러나 곧 내 스스로 창피하다는 생각에 그만 두었다.

내가 강남의 유학원을 통해서 계약한 일본어학교는 기숙사에서 버스를 타고 또 다시 전철을 타고 편도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대중교통 요금이 비싼 도쿄에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어느 날 일본어학교에서 학급은 다르지만 나 보다 아래 반에 다니고 있던 한국인 유학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학생이었는데 자기는 일본에 친척이 있어서 방을 구하는데 필요한 보증인을 세울 수 있으니 자기와 같이 자취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마침 나도 지금 살고 있는 기숙사에서 나가고 싶었기 때문에 그 친구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이불 보따리를 들고 일본의 전철 야마토테센(山手線)을 탔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