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쿠시마현(福島県)면적:13782k㎡, 인구: 약 214만명.
후쿠시마현의 역사
무가정권시대(武家政権時代): 12세기에 겐지씨(源氏)가 일본 최초의 무가정권을 확립했을 때, 전공을 올린 무장 3인이 각각 아이즈(会津), 다테(伊達), 소마(相馬)의 영지를 부여받았으며, 그 후 이들 무장들은 아시나(蘆名:아이즈지방), 다테(나카도리 북부의 다테지역), 소마(하마도리 북부의 소마지역)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15∼16세기에는 전국 무장들끼리의 패권 다툼이 심하였고 후쿠시마를 통치하는 다이묘(大名:영주)가 자주 바뀌었습니다. 천하를 통일한 토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에도(江戶)에 막부를 연 1603년부터 시작된 에도시대부터 에도막부는 북방 통치를 위해 후쿠시마현에 아이즈번(会津藩)과 시라카와번(白河藩)을 설치했습니다. 1643년 아이즈에 들어갔던 도쿠가와계의 초대 번주(藩主: 영주)는 3대 장군의 배다른 동생인 호시나마사유키(保科正之)였습니다. 그 후 아이즈번은 명치유신이 일어나고 메이지정부가 발족할 때까지 220년간 9대에 걸쳐 에도막부를 지지했습니다.
에도시대~에도막부말기 : 19세기 중반 도쿠가와정권은 쇠퇴하고 일본은 정치 및 경제적으로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도쿠가와막부를 쓰러뜨리고 새로운 정부를 발족하려는 일본남부지역의 사쓰마번(薩摩藩:지금의 가고시마지역), 쵸슈번(長州藩: 지금의 야마구치현)이 막부 측인 일본동부지역 여러 번과 충돌하여 보신전쟁(戊辰戰爭)이 발발했습니다. 아이즈번은 도쿠가와막부의 마지막 카드로 도호쿠지방의 여러 번과 동맹(奧羽越列藩同盟)을 맺고, 에도성(江戶城)이 넘어간 이후에도 계속 싸웠습니다. 아이즈에 있는 쓰루가성(鶴ヶ城:와카마츠성)이 함락될 때까지 6개월간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니혼마쓰에서는 니혼마쓰소년대(二本松少年隊)가 아이즈에서는 백호대(白虎隊:모두 17세 이하의 소년들)가 분전했지만 모두 비극을 맞이하였고 지금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연호가 메이지(1868∼1912)로 바뀌고 1871년에 봉토를 폐지하고 현을 설치하는 행정개혁이 시행되었는데, 후쿠시마에서는 11개 번이 후쿠시마(福島), 와카마츠(若松), 이와사키(磐前)의 3현으로 통합 되었습니다다. 5년 후인 1876년에는 이들 3현이 통합되어 현재의 후쿠시마현으로 탄생했으며, 후쿠시마성(福島城)이 있던 장소에 후쿠시마현청이 있습니다.
근대 : 후쿠시마현 북부에 위치한 다테지방에서는 에도시대가 끝나갈 무렵부터 양잠업이 번창해 생사가 대량으로 수출되었다. 도쿄에서 하마도리까지 개통된 철도에 의해 동부지역에서 공업이 발전하게 됩니다. 특히 이와키시(磐木市)의 조반(常磐)탄광에는 근대 설비가 도입되어 생산량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당시 도쿄지방에서 사용하던 석탄의 대부분이 조반탄전에서 생산된 것이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러한 생산품(석탄, 생사)은 그 후 수입품으로 대체될 때까지 일본의 경제를 이끌어왔습니다. 현재 :최근에는 후쿠시마현이라고 하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공업도시보다는 골프장, 스키장, 온천 등 관광지로서의 이미지가 강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이이자카온천(飯坂温泉)
후쿠시마시에 있는 이이자카온천은 나루코온천(鳴子温泉), 아키우온천(秋保温泉) 과 함께 일본 동북지역을 대표하는 3대 온천중의 하나입니다. 온천여관의 수가 100여개로 총수용인원이 1만명에 이르는 후쿠시마현 최대의 온천마을입니다.
아즈마타카유온천(吾妻高湯温泉)
반다이아즈마(磐梯吾妻)지역관광의 전진기지의 역활을 하는 곳으로 여름에는 등산, 겨울에는 스키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입니다. 자오온천, 시라부온천과 더불어 일본동북지역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온천 중의 하나로 온천마을에서 보는 전망이 아주 좋습니다. |